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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29 [아프로①] 음악으로 아프리카 바이브를 전하다-정환진 아프리카음악춤연구소 소장 [월드코리안뉴스]

관리자 / 2021-04-30 오전 9:28:00 / 120

‘Af-PRO’는 국내 아프리카 전문가들의 모임이다. 외교부 한·아프리카재단에서는 이들의 활동을 소개한 책을 두권 펴냈다. ‘Af-PRO, 한국과 아프리카를 잇다’는 제목의 단행본들이다. 한·아프리카재단의 허락을 받아, 이 책의 내용을 연재한다.[편집자주]

정환진 아프리카음악춤연구소 소장은 국내 최초로 코트디부아르 국립예술원에서 아프리카 전통 음악학을 수료했다. 아프리카 음악이 자신의 전문 분야인 국악에 신선한 기운을 불어넣으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 소장은 아프리카에서 유학한 경험을 통해 자신만의 독자적인 음악 세계와 이력을 구축했다. 그는 현재 국내에 아프리카 음악을 알리고 국악에 아프리카 음악을 접목하여 새로운 차원의 음악을 만드는 동시에 아프리카에 한국과 국악을 소개하는 문화 전도사 역할에 앞장서고 있다.

젬베와의 첫 만남, 그 떨림의 순간

2005년 양방언 선생님의 콘서트를 앞두고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리허설을 할 때였다. 합주에 참여한 한 일본인 연주자가 북처럼 생긴 낯선 악기를 두드리자 그 속에서 공명한 소리가 일순간 공기 중에 퍼지더니 큰 무대를 가득 메웠다. 깊은 울림과 폭넓은 음역대를 지닌 낯선 북소리에 매료되어 한참을 멍하니 감상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그 악기가 무엇인지, 또 내 인생을 어떻게 운명 지을지 알지 못했다. 하루는 악기상이 모여 있는 낙원상가에 들렀다가 그날 본 것과 똑같이 생긴 악기를 발견했다. 악기상은 그것이 아프리카 타악기 ‘젬베(Djembe)’라고 일러줬다.

그 자리에서 무작정 젬베와 레슨 비디오를 하나 구입했다. 사실 나는 그때까지 아프리카 음악을 잘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레슨 비디오를 보며 젬베 연습을 하면서 서서히 아프리카 음악과 리듬에 빠져들었다. 아프리카 정보를 교류하는 한 인터넷 카페에서 국내에 ‘쿰바야’라는 아프리카 타악연주 그룹이 있다는 사실과 그곳 대표인 곽연근 선생님이 젬베 수업을 연다는 소식을 접했다.

나는 곽 선생님에게 젬베 연주법을 배우며 자연스럽게 그곳의 일원이 되었다. 그리고 2008년 일본 이오지마에서 열린 젬베 워크숍에 참가했다. 워크숍을 이끄는 마마디 케이타(Mamady Keita)는 아프리카 기니 출신의 젬베 연주자로 전 세계에 젬베의 소리를 알린 거장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김덕수 선생 같은 존재라고 하겠다. 그분의 연주를 들으며 나는 충격과 같은 자극을 받았다.

국내에서 영상을 보며 연습한 것과 전혀 다른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처음 젬베의 원류를 찾아 아프리카에 직접 가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던 때였다. 국악으로 국내 대학원에 진학할지, 아프리카로 건너가 그곳의 전통 음악을 배울지 고민한 끝에 나는 아프리카행을 택했다.

편견을 넘어 몸으로 마주하다

처음에는 당연히 케이타 선생의 고향인 기니를 목적지로 삼았다. 그런데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또 주변인으로부터 들은 바에 따르면 기니는 여러모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 적당한 교육 기관을 찾기 힘든 상황에서 무작정 건너가 마땅한 선생을 찾아다닐 용기가 선뜻 나지 않았다. 그때 국내에서 음악 활동을 하는 코트디부아르 친구들이 자국에 젬베를 정식으로 가르치는 국립예술원이 있다고 귀띔해주었다.

젬베는 서아프리카 전통 타악기로 기니, 말리, 세네갈, 부르키나파소 등과 함께 코트디부아르도 그 원류에 속하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심지어 국가가 공인한 교육 기관이었다. 나는 재빨리 시선을 기니에서 코트디부아르로 옮겼다. 코트디부아르는 프랑스어를 쓰기에 어학 공부를 할 겸 프랑스 파리로 먼저 건너가 기니에서 온 선생이 운영하는 음악 학원을 다니며 젬베를 배우기도 했다.

2010년 여름, 9월 개학을 앞두고 드디어 코트디부아르로 건너갈 시간이 다가왔다. ‘위험하다’ ‘거칠다’ ‘지저분하다’ ‘비위생적이다’ 등 주변에서 들려오는 부정적인 평가들로 막연한 두려움이 엄습했다. 설상가상으로 도착 일주일 전까지 숙소를 잡지 못했다. 어떻게든 부딪혀서 헤쳐나갈 생각이었지만 앞날이 깜깜한 게 사실이었다.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튀니지를 경유하여 코트디부아르 수도 아비장에 위치한 펠릭스 우푸에부아니(Felix Houphouet-Boigny) 국제공항에 당도했다. 코트디부아르 땅에 발을 디디는 순간 나는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의 피부색이 검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흑인들을 향한 막연한 두려움에 잔뜩 겁을 먹고 있는데, 모르는 사람들이 카트를 끌고 와 내 짐을 실어 날랐다.

말도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저지할 용기가 나지 않아 그들을 따라가며 ‘살아 돌아갈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1년간 머물기로 한 중국한인동포의 집에 여장을 푼 이후에도 한동안 무서워서 집밖에 나가지 못했다. 동네에서 학교로 행동반경을 조금씩 넓혀 가던 중 나는 뜻밖의 경험을 했다.

길에서 마주친 사람들이 하나같이 나를 향해 환하게 웃어주는 것이었다. 나에게 호감을 가지고 다가오는 그들의 얼굴을 비로소 용기를 내어 정면으로 마주봤다. 마냥 무섭게 보이던 면면들이 그렇게 선해 보일 수가 없었다. 여태껏 그들을 무섭고 두려운 존재로 여긴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코트디부아르에서 맞이한 인생의 전환점

내가 석사학위를 취득한 코트디부아르 국립예술원은 미술, 무용, 음악 등 문화 예술을 다방면으로 가르치는 곳이다. 그중 내가 지원한 음악학과는 외국인이 입학한 일이 처음이라고 했다. 첫 외국인 학생의 등장에 학교 사람들도 적지 않게 당황한 눈치였다. 총장은 나를 앉혀 놓고 학비를 얼마 받아야 할지 고민할 정도였으니 다른 부언은 필요 없을 거라 생각한다.

코트디부아르가 경제 수준이 우리보다 다소 떨어지다 보니 학교는 시설이 열악하고 교과 과정도 엉성한 편이었다. 또 사람들의 성정이 대체로 여유로운 편이어서 개학을 해도 제때에 수업이 시작되지 않는 등 답답한 면이 있었다. 그럼에도 아프리카 전통 음악을 배우기에 이만큼 좋은 환경이 없었다.

흥이 많고 자신들의 문화 예술에 자부심이 큰 코트디부아르 사람들은 일상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일을 즐겼다. 내게 코트디부아르에서 보낸 2년은 깨어 있는 모든 순간이 아프리카 리듬을 몸에 익히는 수업 시간이나 마찬가지였다. 누군가는 그곳의 교육 방식에 불만을 가질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