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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06 [아프로②] 아프리카 난민과 커피로 첫인사를 나누다- 문준석 ‘내일의 커피’ 대표 [월드코리안뉴스]

관리자 / 2021-05-06 오후 3:26:00 / 1660

‘Af-PRO’는 국내 아프리카 전문가들의 모임이다. 외교부 한·아프리카재단에서는 이들의 활동을 소개한 책을 두 권 펴냈다. ‘Af-PRO, 한국과 아프리카를 잇다’는 제목의 단행본들이다. 한·아프리카재단의 허락을 받아, 이 책의 내용을 연재한다.[편집자주]


카페 ‘내일의 커피’는 언뜻 보기에 여느 카페와 다르지 않다. 노란 문이 반기는 공간 가득 감미로운 커피 향이 감돈다. 바리스타의 피부색이 짙지만, 이미 우리 사회에 다양한 국가의 외국인들이 많이 들어와 있는 만큼 크게 놀랍지 않다. 그런데 그들은 뜻밖에도 아프리카 출신의 난민들이다.

문준석 대표는 봉사 활동하며 연을 맺은 아프리카 난민들에게 보다 나은 일자리를 안기고 싶었다. 그리고 커피가 한국인과 아프리카 난민의 어색한 첫 만남을 부드럽게 이으리라 믿었다. 그리하여 바리스타를 육성하는 직업학교 겸 카페인 내일의 커피를 열었다. 내일의 커피는 공간은 작지만, ‘커피는 쓰다’는 편견과 함께 난민을 향한 선입견을 유연하게 뛰어넘는 큰 공간이다.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다

나도 내 인생이 이리 흐를지 그때는 미처 몰랐다. 10여 년 전 교회가 주관하는 봉사 활동에서 팀장직을 맡으며 삶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국내에 거주하는 난민이 우리 사회에 잘 적응하도록 돕는 일이었다. 한 달에 한 번 진행되는 봉사활동이었기에 의욕만큼 거창한 도움을 주기는 힘들었다.

어린 난민 2세들을 데리고 놀이동산, 찜질방, 수영장 등을 가는 것이 주된 활동이었다. 그러나 아이의 부모들은, 한국에서 태어나 모국어가 한국어인 아이들이 오히려 다양한 문화체험, 야외활동들을 통해 한국사람들, 한국문화와 가까워져 좋다고 했다. 부모들은 의사소통이 아직 서툴고 생계를 우선 챙기다 보니 아이들을 데리고 자유롭게 놀러 다니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한 달에 한 번 그 역할을 대신하기로 했던 것이다.

그런데 만남을 거듭할수록 도리어 그들에게 위로를 받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그들은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축하할 일이 생기면 멋들어지게 치장하고 근사한 선물을 챙겨 이웃을 찾았다. 또 축하받는 이웃은 손님들이 넉넉하게 먹을 수 있도록 음식을 푸짐하게 준비했다. 그들과 어울리며 나는 지난 한 달간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풀었다. 정말 그들 사이에 끼어 있으면 유쾌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가 가정 방문하여 친분을 쌓은 난민들은 모두 아프리카 국가 출신이었다. 그들은 우리 모두가 그렇듯 각자 자신만의 매력과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내가 만난 친구들은 특히 손재주가 뛰어났다. 음식을 곧잘 만들고 빵도 잘 구웠다. 그들의 손길이 닿은 수공예품과 미술품은 전에 본 적 없는 독특한 색채와 형태를 자아냈다.

조력자와 수혜자로 맺은 관계가 친구 사이로 발전할수록 그들의 타고난 재능과 색채를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졌다. 그 생각이 영글 즈음 교회에서 바자회를 연다는 소식을 접했다. 나는 바자회에 난민들을 초대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그린 그림이 새겨진 머그컵과 직접 만든 음식을 팔고, 전통춤과 노래공연도 작게나마 준비해주었다. 반응은 뜨거웠다. 음식과 머그컵의 인기가 높았을 뿐 아니라 바자회를 찾은 사람들의 태도 또한 매우 우호적이었다.

바자회를 성황리에 마무리하며 우리 사회가 난민을 향해 편견을 가진 이유가 어쩌면 그들을 일상에서 만나보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아프리카 난민의 재능이 사람들의 선입견을 어느 정도 해소해줄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 확신을 새로운 형태의 사업으로 연결해 난민이 이 사회에서 취할 수 있는 일자리의 폭을 넓히고 우리 사회와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확장하고 싶었다.

생각을 행동으로, 가치를 현실로

처음 고려한 사업 아이템은 식당이었다. 내가 만난 한국 사람들 대부분이 졸로프 라이스(Jollof rice)와 같은 아프리카 지역의 음식을 입맛에 맞아 했기 때문이었다. 식당이 가장 안전한 선택일 듯싶었다. 그런데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었다. 난민들이 주로 주방 안에서만 일한다면 한국 사람들과 직접 마주하며 편견을 깰 기회를 충분히 가질지 의문이 들었다. 그런 측면에서 식당은 불합격이었다.

한편, 카페는 가능성이 엿보였다. 현대 사회에서 카페는 가장 문턱이 낮은 공간이자 음악, 음식, 인테리어, 디자인 등 일반 소비자와 다양한 접점을 만들어갈 수 있는 문화 플랫폼 역할을 한다. 난민과 함께 카페를 운영한다면 커피를 매개로 그들이 우리나라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얼굴을 트고 호의적인 분위기 속에서 자신들의 제과 제빵, 디자인 솜씨 등을 선보일 수 있으리라.


한편 아프리카 대륙, 특히 동부아프리카 지역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커피 산지임에도 아이러니하게 커피를 소비하는 문화가 발달하지 못했다. 양질의 신선한 커피 원두를 대부분 수출하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아프리카 국가 출신의 바리스타가 내리는 아프리카 스페셜티 커피’라는 콘셉트는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를 지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사업을 좋은 취지로만 전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회사를 다니며 바리스타 교육 과정을 찬찬히 밟았다. 또 생애 첫 창업이 기존에 사례가 없는 분야에 속한 만큼 최대한 비슷한 환경을 찾아 미리 경험할 필요성을 느꼈다. 하지만 국내에 난민이 중심이 되어 운영하는 카페나 레스토랑은 전무했다. 차선책으로 새터민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매니저로 일했다.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과 일하며 문화의 차이로 야기될 수 있는 문제들을 어느 정도 미리 예상하고 대비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