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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10 [아프로⑦] 여행길에서 남아공 와인을 발견하다- 주은수 케이프밸리와인 대표 [월드코리안뉴스]

관리자 / 2021-06-10 오후 1:22:00 / 1587

남아공은 품질 좋은 와인을 생산하는 천혜의 자연 환경을 타고났다. 또 그곳의 와인메이커들은 자신이 딛고 선 땅의 가치를 알고 최대한 자연의 순리에 맞추어 와인을 빚는다. 그것이 남아공 와인이 특별한 이유다. 케이프밸리와인 주은수 대표는 남아공의 식재료를 수입하는 일로 사업을 시작해 현재는 남아공 와인을 수입하는 일에 매진한다. 사실 주 대표는 그전까지 남아공에 연고가 없었으며 와인 비즈니스에 종사한 이력도 없었다. 오로지 남아공 와인을 향한 강한 확신과 애정으로 남아공 와인만 취급하는 수입사를 차렸다. 그녀는 부족한 경험과 노하우를 직접 남아공에 산재한 와이너리들을 방문해 관계를 맺는 방법으로 채워 나갔다. 덕분에 350년 전통의 남아공을 대표하는 대형 와이너리부터 남아공 와이너리 중 전 세계에서 가장 각광을 받는 부티크 와이너리까지 쟁쟁한 업체와 거래를 성사했다. 겁 없는 주 대표의 남아공 와인 비즈니스 도전기를 들어본다.

치유의 땅에서 발견한 향과 풍미

나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다. 사회 초년에 스페인어 동시 통역사로 소속 없이 자유분방하게 일했다.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자 조직생활이 궁금해 덜컥 취직했다. 해외건설협회였다. 국내 엔지니어링 기업이 해외에 진출하거나 국제 경쟁력을 갖추도록 지원하는 기관이었다. 나는 스페인어에 능통하고 중남미 정보에 밝다는 이유로 지역정보실에서 시장조사를 맡았다. 하지만 아무래도 건설에 전문 지식이 없어 힘에 부쳤다.

더불어 협회에서 하는 활동에 한계를 느낄 때쯤 이직 제의를 받고 민간 건설기업으로 옮겼다. 의도치 않게 건설업계에서 전문가들과 수년간 일하며 스스로 완벽하다고 느낄 때까지 채찍질을 한 탓일까. 나는 건강을 잃고 다시 자유롭게 내 일을 하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혀 회사를 돌연히 그만두고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으로 향했다. 거창한 계획은 없었다. 그저 가까운 지인이 그곳에 있었고, 그때까지 아프리카 대륙을 밟아본 적이 없어 가벼운 마음으로 남아공 행을 택했다. 나는 외국어를 전공하고 해외사업부서에서 일하며 외국을 여행하는 일이 잦았다.

풍부한 해외 경험은 나를 곧 미식의 세계로 이끌었다. 특히 한 잔의 술에 지역의 역사와 자연의 기운을 담아내는 와인에 매료됐다. 그런 내게 남아공의 웨스턴케이프(Western Cape) 주는 미각적 호기심을 깨우는 치유의 땅이었다. 거대한 산맥을 이루는 크고 작은 산마다 와이너리들이 점점이 숨어 있었다. 나는 매일 새로운 와이너리를 발굴하며 그곳의 맑은 공기와 감미로운 와인에 심취했다.

케이프타운(Cape Town)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위치한 스텔렌보스(Stellenbosch)는 남아공 와인의 중심지이자 희귀한 토착 식물이 자라는 천혜 자연으로 이름 높다. 하루는 스텔렌보스에 있는 한 농장을 찾았다가 앞으로 내게 다가올 운명의 기운을 감지했다. 페리, 카렌 찰로너(Perry, Karen Chaloner) 부부가 운영하는 농장이었다.

그들은 잼, 타프나드(tapenade), 올리브유 등을 주로 만들어 판매했는데, 거의 모든 재료를 자신들의 농장에서 구했다. 설탕이 거의 유일하게 외부에서 충당하는 재료였다. 풍미 또한 차원이 달랐다. 잼에 라벤더, 민트 등의 허브를 넣어 독특하면서 복잡다단한 맛과 향을 이끌어냈다.

직접 수확한 올리브로 만든 오일과 타프나드 제품에도 그들의 정신이 잘 담겨 있다. 싱그러운 기운이 가득한 농장을 둘러보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잼, 타프나드, 올리브유를 맛보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 정직하고 인간다운 면모를 지닌, 건강하고 신선한 제품을 국내에 소개하는 일이야말로 내 운명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리해 여행길에 돌아오자마자 남아공의 식재료를 수입하고 식문화를 소개하는 회사를 덜컥 차렸다.

찰로너의 제품과 세계적 명성의 모헨스터(Morgenster) 올리브유는 건강하고 색다른 식재료를 찾는 국내 소비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단순히 제품을 판매하는 차원을 넘어 내가 사랑하는 남아공의 한 조각을 그들과 나누는 듯했다. 어쩌면 이 일이 그토록 찾아 헤맨 나의 천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뜩문뜩 들었다. 우리에게 낯선 남아공의 식재료를 수입하는 다소 무모한 일로 사업의 첫 단추를 잘 꿰었다면 지금은 남아공 와인을 알리는 일에 집중한다. 남아공을 여러 차례 방문하며 그곳의 와인에 푹 빠졌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대륙은 고대에 바다에 잠겨 있던 것이 여러 차례 융기해 지금의 지형을 이뤘다. 한편, 고인류학자 대부분이 인류의 기원을 아프리카 대륙에서 찾으며,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땅으로 간주한다. 역사가 깊으며 융기와 침강, 퇴적을 반복한 아프리카 대륙은 토양이 비옥하고 복잡다단하며 석회질이 풍부하다. 특히 케이프폴드(Cape Fold) 산맥이 가로지르는 웨스턴케이프 주는 복잡한 지형만큼 날씨가 변화무쌍하다.

미세 기후가 발달해 같은 지역이더라도 와이너리마다 잘 익는 포도 품종과 익는 속도가 달라 서로 구별되는 독특한 와인이 탄생한다. 내가 회사 이름을 ‘케이프밸리와인’이라고 지은 이유도 무수히 많은 골짜기가 만들어 내는 변수가 남아공 와인에 무한대의 매력과 개성을 덧입히기 때문이다. 더불어 기후도 지중해성에 가까우며, 무엇보다 남아프리카 서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오르는 한류의 영향을 받아 같은 위도에 놓인 다른 지역보다 기후가 낮다. 그만큼 포도가 서서히 익기 때문에 더 많은 향과 맛, 영양분을 응축한다. 해풍의 염도가 와인에 감칠맛을 더하는 것은 덤이다.

묵묵한 의지로 아픈 역사를 딛고 일어선 남아공 와인, 그 가치와 힘

남아공이 완성도 높고 개성 강한 와인이 탄생하기에 최적의 장소라는 사실은 오래전에 검증됐다. 18세기 네덜란드 사람들이 남아공에 정착하며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와인의 역사가 350년에 달하니 신대륙 와인 산지 중에서는 긴 편에 속한다. 그럼에도 남아공 와인은 우리에게 낯설다. 역사가 더 짧은 호주 와인은 잘 알아도 남아공 와인은 모른다. 일부 사람들은 아프리카 대륙에서도 와인을 생산하냐며 무척 의아해한다.

그 원인은 남아공의 근대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남아공은 1970년대 이후 백인 정권이 인종차별정책인 ‘아파르테이트(Apartheid)’를 펼쳐 전 세계로부터 통렬한 비난을 받았으며 동시에 심각한 경제 제재를 당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 많은 국가들이 국제연합(UN)의 결의를 존중해 정치·경제·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남아공과의 교류를 제한했다. 그전까지 남아공은 동인도회사를 통해 와인을 유럽에 활발하게 수출했다. 유럽의 궁정에서 즐겨 마실 만큼 남아공 와인은 그 품질을 인정받았다. 그러던 차에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되면서 수출길이 막히자 남아공의 와이너리들은 국내에서 소비할 저급 와인을 만드는 데 만족해야 했고, 와인 산업은 침체기에 접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