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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223 [아프로23] 아프리카 지도 위에서 청춘의 나래를 펼치다-손휘주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석사과정 [월드코리안신문]

관리자 / 2021-12-23 오후 5:47:00 / 1585

지리학을 전공한 손휘주 학생은 제대 후 복학하기 전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었다. 전 세계 6개 대륙 중 어디를 갈지 고민하던 그는 한 지리 서적을 통해 아프리카 이야기를 접한 뒤 케냐로 향했다. 케냐에서 스스로 얼마나 편협한지 깨달은 손휘주 학생은 더 너른 세상을 보게끔 안내해준 아프리카에 점점 빠져들었다. 첫 여행이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였다면, 두 번째 여행은 다양한 이야기를 수집하여 아프리카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을 깨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아프리카에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보다 참신한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여긴 손휘주 학생은 또 한 차례 아프리카행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 여행길에서 오히려 자신의 한계와 맞닥뜨리며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사람들에게 여행 경비를 투자받는 대신 책을 출간하여 보상할 예정이었으나, 본인이 짠 여행 계획으로는 약속한 책을 완성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여행을 중단하고 귀국하여 아르바이트를 하며 투자금을 갚아 나갔다. 이 과정에서 자신에게 실망한 그는 1년 반을 일과 글쓰기로 보낸 뒤, 마지막 아프리카 여행길에 올랐다. 그 길에서 오랜 시간 물음표로 남겨둔 의문에 비로소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바로 자신이 아프리카에 강한 애착을 품어온 이유를 말이다. 아프리카를 통해 여러 차례 성장통을 겪으며 성장한 손휘주 학생의 청춘이 고스란히 담긴 아프리카 답사기에 귀 기울여 본다.

지리학도, 아프리카에 첫발을 내딛다

2013년 전역 후 멀리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어디를 가면 좋을까. 해답을 찾던 중 1학년 수업 시간에 인상 깊게 읽은 책 <분노의 지리학>을 다시 꺼내 찬찬히 읽었다. 책 말미에 다다라서 등장한 구절을 읽고서야 비로소 목적지를 정했다. ‘수십만 년 동안 아프리카는 인류를 기르고 단련시켰으며 전 세계로 내보내어 이 행성을 영구히 바꾸어 놓았다. 아프리카의 시대, 아프리카의 차례가 다시금 돌아올 것이다’라는 구절이었다. 아프리카는 나에게 완전히 낯설고 새로운 대륙이었다. 설레면서도 두려운 감정 속에 아프리카행을 결심했다. 첫 번째 아프리카 답사의 목적지는 케냐였다. 아프리카 55개국 중 가장 정보를 얻기가 쉬웠던 4개국으로 이집트, 나이지리아, 남아프리카공화국, 케냐가 있었다.

지리학도, 아프리카에 첫발을 내딛다

2013년 전역 후 멀리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어디를 가면 좋을까. 해답을 찾던 중 1학년 수업 시간에 인상 깊게 읽은 책 <분노의 지리학>을 다시 꺼내 찬찬히 읽었다. 책 말미에 다다라서 등장한 구절을 읽고서야 비로소 목적지를 정했다. ‘수십만 년 동안 아프리카는 인류를 기르고 단련시켰으며 전 세계로 내보내어 이 행성을 영구히 바꾸어 놓았다. 아프리카의 시대, 아프리카의 차례가 다시금 돌아올 것이다’라는 구절이었다. 아프리카는 나에게 완전히 낯설고 새로운 대륙이었다. 설레면서도 두려운 감정 속에 아프리카행을 결심했다. 첫 번째 아프리카 답사의 목적지는 케냐였다. 아프리카 55개국 중 가장 정보를 얻기가 쉬웠던 4개국으로 이집트, 나이지리아, 남아프리카공화국, 케냐가 있었다.


그중 사하라이남 아프리카, 영어권 국가, 주변 국가의 언어, 자연 또는 문화경관의 다양성 등 여러 기준에 부합하는 곳이 케냐라고 생각했다. 목적지를 결정한 후 현지에서 합류할 수 있는 케냐 NGO의 봉사 프로그램을 찾았다. 지리 답사가 목표였으나 정보가 많지 않아 답삿길에 나서기가 조심스러웠기 때문에 봉사활동을 하며 현지 적응 기간을 가지는 동시에 답사를 준비할 요량이었다. 봉사활동을 할 지역을 결정할 때는 기후와 인구를 기준으로 삼았다. 케냐 동부의 건조한 곳보다 서부의 습윤한 곳에 더 많은 인구가 살았고 경관도 다채로워 인근에 관광지도 많았다. 그래서 서부 지역의 한 산촌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을 선택하여 3주간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한 지역 사회의 다양한 문제에 관여하는 프로그램으로 오전에는 건설 현장에서 일하거나 의료 봉사를 하고, 오후에는 학교에서 학생들과 토론을 하거나 가정 방문을 다녔다.

그렇게 3주간의 봉사활동이 끝난 이후에도 나는 왜인지 홀로 답사를 떠나겠다는 결심이 서지 않았다. 외국인에게 돈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태도나 외지인이 다닐 만큼 대중교통 인프라가 잘 갖춰지지 않은 상황 때문에 적응 기간이 더 필요하다고 느껴졌다. 그렇게 두 번째 봉사활동을 이어갔다. 다만 이번에는 건조하고 인구도 적은 동부 지역으로 가보기로 했다. 다행히 같은 기관에서 동부에도 봉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당시 나는 케냐를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산촌을 돌아다니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어느 주민의 마당 앞에 놓인 길을 지나쳐야 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처음 봉사를 했던 서부 지역의 한 마을에서는 집주인이 나와 통행료를 요구하곤 했다. 동부 지역에서도 남의 집 마당 앞을 지나갈 일이 생겨 조심스럽게 한 발씩 내딛는데 주인이 집에서 나와 내게 다가왔다. 순간 ‘역시’ 싶었다. 그런데 집주인은 통행료를 요구하기는커녕 악수를 청하더니 차를 권했다. 내가 케냐 사람을 잘 모를뿐더러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부끄럽기도 했지만 동시에 또 다른 지역을 가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밀려왔다. 서부와 동부의 작은 마을들을 경험하며 용기 내어 답사를 준비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