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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08 [아프로⑪] 아프리카에서 음악은 매일 뜨고 진다 - 하림 [월드코리안뉴스]

관리자 / 2021-07-09 오전 8:24:00 / 1603

가수 하림은 다양한 문화권의 음악을 흡수하며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 활동을 펼친다. 그의 폭넓은 작품 세계에는 아프리카 지역에서 영감을 받아 쓴 곡도 있다. 하림은 영감을 받으면 그곳에 선한 영향을 끼쳐야 한다고 여긴다. 그리하여 아프리카 국가와 지역을 여행한 경험을 무대로 옮겨 관객들과 아프리카의 다채로운 매력을 나눈다. 또 공연으로 얻은 수익의 일부를 음악에 재능을 지닌 아프리카 국가의 아이들에게 기타를 선물하는 데 활용한다. 어느 덧 10주년을 목전에 둔 ‘기타 포 아프리카’ 프로젝트를 통해 하림은 기타 수십 대를 아프리카에 보냈다. 

하지만 때로는 선한 의지를 담아 보낸 기타가 괜한 분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때마다 그는 자신의 행동이 진정으로 옳은지 의구심이 들었다. 마치 마음으로 벌을 서는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자신이 수년 전 보낸 기타를 통해 가수로 데뷔한 친구를 만나며 음악이 악한 의도를 가질 수 없음을 새삼 깨달았다. 또 삶 속에서 음악을 순수하게 즐기는 아프리카 사람들을 보며 음악을 하는 이유를 되찾았다. 아프리카는 대중음악시장에서 방향을 잃고 헤매던 그를 단단히 붙잡았으며 더불어 무한한 영감을 안겼다.

대자연에서 느낀 본질적 미학

2008년 EBS 세계테마기행 제작진이 나미비아 여행을 제안했다. 선뜻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여행을 즐기지만, 음악만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아픈 역사를 구슬픈 음률로 승화하며 많은 음악가를 배출한 아일랜드를 동경했다. 또 플라멩코(Flamenco), 렘베티카(Rembetica), 파두(Fado)를 듣고 배우기 위해 스페인, 그리스, 포르투갈을 향했다. 사람이 오래 머물러 음악이 중첩된 유럽의 고도시가 주로 나를 이끌었다. 물론 블루스(Blues), R&B, 소울(Soul) 등 팝 음악이 아프리카 음악에 큰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실이 그리 피부에 와 닿지 않았다. 거절할 핑계를 찾던 내게 제작진이 사진 한 장을 건넸다. 나미비아 데드블레이(Deadvlei)에 앙상한 고목 한 그루가 서 있는 사진이었다.

데드블레이는 사막에 있는 호수가 말라붙으며 그곳에 기생하던 나무들이 검게 말라죽어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여백이 대부분이 사진 속 풍경을 보는 순간 머릿속이 방대한 이야기로 가득 차는 것을 느꼈다. 신비한 순간을 경험한 나는 강한 힘에 이끌려 나미비아를 향했다. 사람의 기운이 생동하는 도시의 소로를 헤매다가 광활한 자연 앞에 서니 형언하기 힘든 감정이 밀려왔다. 사람이 풍경의 일부조차 될 수 없는 너른 자연을 보며 인간이 지구상에서 별 것 아닌 존재일 수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음악이 인간의 감정에 기대어 발전한 인류 문화의 산물이라고 여겼다. 당시 음악이 내 인생의 전부였던 만큼 그 중심에 존재한다고 여겼던 인간이 우주의 미약한 존재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자 혼란스러웠다. 2001년 가수로 데뷔하며 대중음악시장의 일원이 된 후 나는 깊은 고뇌에 빠져들었다. 내 삶의 중심이던 음악이 도구로 밀려난 듯했으며, 더 이상 음악을 하는 행위가 예전처럼 즐겁지 않았다. 날로 늘고 쌓이는 고민을 억제할 길을 찾지 못해 한동안 활동을 접고 여행을 다니기도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나미비아에서 오래 끌어온 고민과 번뇌를 조금 내려놓을 수 있었다.

아프리카 국가의 아이들에게 음악은 근사한 놀이였다. 나미비아에서 아이들이 합창을 하며 하루 종일 노는 모습을 보며 오랜만에 삶에서 음악을 발견한 기분이 들었다. 어른이 되며 잊었지만, 우리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국내에서 음악은 개인이 매체를 통해 엔터테인먼트로 소비하는 일종의 상품이며, 음악가에게는 생계 수단이다. 반면,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음악은 삶을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처럼 보였다. 음악은 하는 사람이 즐거워야 가치가 있으며, 그랬을 때 듣는 사람도 진정 행복해진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아프리카는 내가 그동안 품어 왔던 고민보다 훨씬 더 원론적인 차원에서 음악을 바라보게 했다. 여태껏 매몰되어 온 음악의 장르, 스타일, 시장성에서 오히려 벗어나 생각하게끔 한 순간이었다. 진리에 가까워지며 마음이 맑고 밝아진 까닭일까. 아니면 대자연의 품에 안긴 까닭일까. 나미비아에서 곡이 절로 써졌다.


기타 포 아프리카(Guitar for Africa), 기타와 사람이 하는 일

영감을 받았으니 갚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또 미안한 마음에 무엇이라도 거들고 싶었다. 길에서 우연히 술 취한 여인과 아이를 발견했다. 미군 부대가 주둔했을 때 맥주를 마셨던 기억을 잊지 못해 사람들이 자꾸 술을 찾는다고 했다. 아프리카 대륙은 인류의 기원이 깃든, 유서 깊은 땅이다. 영겁의 세월 동안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살아온 아프리카 대륙에 외국인들이 얕은 생각으로 들어와 그들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든 결과를 목도하니 괜스레 숙연해졌다. 이런저런 생각이 깊어질 때쯤 힘바(Himba)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을 찾았다가 그곳에서 족장의 딸 와푼다 페이를 만났다.

마을 아이들이 이방에서 온 손님을 환영하는 의미로 노래를 불렀는데, 그때 와푼다 페이가 선창을 했던 것이다. 음악적 재능이 엿보여 우쿨렐레를 건네며 간단한 연주법을 가르치자 소녀는 금세 따라 연주했다. 나는 그 아이가 기특하여 서울에 돌아가면 기타를 보내겠다고 약속했다. 서울로 돌아와 다시 바삐 지내던 중 나미비아에 남기고 온 약속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때부터 와푼다 페이에게 기타를 보낼 궁리를 했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일상에서 즐기는 음악은 화음이 적고 리듬 위주여서 기타가 잘 어울릴 듯했다. 어쩌면 예전에 우연히 본, 아프리카 어느 지역의 아이가 철사줄로 만든 기타를 연주하는 사진이 뇌리에 박혀 영향을 끼쳤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