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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07 인터뷰 | 남수단 국가대표팀 총감독 임흥세 장로 [크리스찬타임스]

관리자 / 2022-01-07 오후 5:35:00 / 1533

감독님께서 예수님을 믿게 된 계기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저는 기독교 가정에서 어머니도 전도사로 교회를 섬기고 계셔서 자연스럽게 모태신앙으로 믿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저희 외할아버지 댁인 인천에 선교사들이 들어왔을 때 집을 제공하는 그런 믿음의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평양에서 남한으로 넘어와서 정착하셨습니다. 제가 뒤늦게 선교사로써 헌신할 수 있었던 믿음의 바탕에는 이런 집안의 내력이 있어 이것을 보면서 제가 일찍 마음으로, 또 믿음으로 준비했었다고 생각합니다.

아프리카로 나가기 전에는 광장동의 광현교회라는 곳에서 47세에 장로가 되었습니다. 36년 전에 청파동 삼일교회에 다닐 때 철야기도를 하면서 하나님께 서원기도를 했었는데 '첫 번째, 제가 50대 미만에 장로가 되면 5년 시무하고 선교사로 가겠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축구 감독생활을 시작하면서 11명의 국가대표 선수를 꼭 키우겠다. 그 다음에 세 번째 기도제목은 국가대표 감독이 되겠다'고 기도로 준비하고 있다가 50이 되어서 진짜 선교지로 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의 두 번째 기도제목도 제가 중고등학교 지도자 생활을 할때 이미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때 제가 15명의 국가대표 선수를 키웠는데 그중에 여럿을 국가대표 선수로 키워주셨습니다. 가장 유명한 선수가 홍명보 감독, 김주성, 하석주 등인데 이 선수들이 대표적인 월드컵 출전 선수들이 되었습니다.
그 외에 2진 또는 청소년 대표들도 한 12~13명 되어서 15명 국가대표 선수를 키우게 해달라는 그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아프리카 선교사로 떠나게 되었는데 하나님께서는 5년 후에 남아공 사역을 잘 마치고, 가장 오지인 나라 남수단으로 갔을 때 톤즈에서 일 년동안 사역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때 저에게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요로결석에 위암까지 걸려 건강이 나빠져서 한국에 나와 치료를 받게 된 것입니다. 치료후 다시 남수단으로 들어갔을 때 하나님께서 제가 36년 전 기도했던 국가대표 감독을 남수단의 감독으로 취임시켜주셔서 지금 6년째 남수단 국가대표 총 감독을 맡아 열심히 주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제가 요로결석과 위암을 이겨낸 것도 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톤즈에서 사역할 때 날씨가 50도나 되니까 물을 아무리 마셔도 땀으로 다 나오고 소변으로 나오지 않는겁니다. 결국 요로결석에 걸렸는데 이게 너무 아프잖아요. 그래서 치료차 한국에 가려고 5시간 반을 비포장 도로를 달리다 중간에 소변을 봤는데 돌이 빠지더라고요. 너무 감사했어요. 그래서 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 잠깐 고민이 되었지만 이왕 출발했으니 한국에 가서 종합검진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해 한국에서 검진을 받았는데 위암 판정이 나온 겁니다. 그때 의사들은 두 가지로 수술계획을 얘기해주었습니다.
첫째, 조직검사를 해서 암세포가 부위 전체로 퍼졌으면 다 잘라내야하고, 둘째, 암세포가 어느 한 부위로만 퍼졌으면 시술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아프리카로 돌아가야되니 기도를 했어요. 시술로 하게끔 도와달라고 간절히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시술을 통해서 암세포가 퍼진 부위만 제거하고 일주일 후 깨끗하게 치료되었다는 의사 소견을 듣고 그 다음날로 비행기표를 끊고 남수단으로 바로 들어갔습니다.
주께서 불쌍히 여기사 저의 사역을 응원해주시고 도와주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아프리카로 들어갔습니다. 할렐루야~
그러면 먼저 아프리카로 가시게 된 가장 큰 동기, 그리고 선교하게 된 계기를 말씀해주시겠어요?
맨 처음에 아프리카를 간 곳은 수단이 아니고 남아공입니다. 거기서 4년을 지내다 남수단으로 이동했습니다. 제가 아프리카로 가게 된 동기는 하나님 앞에 36년 전에 기도할 때 가장 열악한 곳으로 저를 보내달라고 기도했거든요. 그때 페루를 중심으로 남미쪽에서 요청들이 왔었는데 여러 가지 사항과 현황을 보면서 아프리카가 더 열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아무도 가지않는 아프리카 남아공 스틴하우스라는 흑인 촌에 들어와서 저의 첫 사역을 시작한 것입니다. 첫 사역으로 가장 먼저 한 것은 축구사역이었습니다. 현지 아이들이 엄청 많이 모였습니다. 남아공 케이프타운이라는 흑인촌에 들어갔을 때 임프멜로아 초등학교에서 축구아카데미를 하는데 700명이나 왔어요, 저 혼자 어떻게 700명을 지도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학교 선생님들이 도와주고 지역의 젊은이들이 도와주어서 그 사역을 잘 마치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아프리카의 축구 선교사로서 완전히 자리매김하게 되었지요. 지금 생각하면 그 모두가 하나님의 예비하심과 도우심이였습니다.

2010년에 남아공 월드컵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남아공은 월드컵 축구 이후 경제적으로 큰 발전을 했습니다. 월드컵 축구를 성공적으로 마친 이후 맹물로 배를 채우고 축구하던 어린이들이 코카콜라랑 맥도널드를 먹으면서 운동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맨발로 축구하던 아이들이 나이키, 아디다스 등 유니폼과 고급 축구화를 신고 축구를 하게 되었죠. 그런 것을 보다보니 제가 하나님 앞에 36년 전에 서원한 가장 오지는 또 아닌거 같았습니다. 그래서 아프리카 몇 개국을 직접 방문을 해봤습니다. 오지를 다시 찾기 위해서 말입니다(하하).
아프리카 중남부 및 동부 아프리카의 몇 개국을 가서 보니까 그 중 전쟁지역에 있었고, 가장 지구촌에서 열악하고 아프리카중에서도 내륙 중에 내륙이라는 남수단 땅을 보니 성령께서 제 마음을 움직이시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남수단으로 옮기기로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수단은 남과 북이 전쟁 중인 위험한 국가이고, 남수단은 기독교 국가로 교회가 많고 북수단은 무슬림이 많다고 하는데 남수단에서 축구선교와 코치로서 시작한 새로운 삶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세요.
남수단에서 가장 열악한 지역인 톤즈로 들어갔습니다. 톤즈는 지금도 사자가 나오는 곳입니다. 톤즈라는 곳은 고 이태석 신부가 선종하신 곳이기도 하잖아요. 그분의 삶을 보면서 천주교 신부지만 예수님의 모습과 닮은 삶을 보이고 돌아가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그분의 발걸음이 참 위대한 것 같아요. 제가 톤즈에서 축구사역을 일 년 남짓 하면서 남수단은 정말 열악하고 더구나 전쟁지역이니 축구를 통해서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 복음까지 아이들에게 연결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어 톤즈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톤즈에 가보니까 축구장이 있었는데 돌들이 너무나도 많이 박힌 운동장 이였습니다. 아이들에게 먼저 청소부터 가르쳤죠. 먹고 아무데나 버리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었어요. 무엇보다도 그들에게 청소와 공중질서그리고 예절을 가르쳤습니다. 즉, 영성 이전에 인성을 먼저 가르치게 된 것이죠. 인성이 점차적으로 바뀌면서 저는 그들의 아빠가 되었고, 친구가 되고, 형이 되면서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성을 심었더니 그게 잘 먹히더라고요. 하나님이 전적으로 도와주셨습니다. 축구하기 전에 항상 예배를 통해서 성경말씀을 가르치고 제 특기인 두 손을 가슴 위에 하트 제스츄어로 어린이들에게 “Jesus loves you”라고 먼저 인사하면 아이들이 답례로 똑같이 하트 제스츄어로 저처럼 “Jesus loves you”를 크게 외치는 것입니다. 그때 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성령이 임하는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할렐루야~
또 선교를 도와주기 위해서 오신 많은 분들도 저의 모습과 수십 명, 수백 명의 많은 아이들이 저를 쫓아하는 것을 보며 그들의 신실한 목소리와 마음에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성령이 역사하시는 것을 느꼈다고 간증을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축구장이 저의 예배당이라고 생각합니다. “Soccer is a mission.” 예수님께서 들판에서 삼삼오오 모여서 복음 전한 산상복음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축구선수로서 축구를 할 때에는 축구공 안에다가 바람을 넣고 볼을 차듯이 지금은 축구 선교사로써 축구공에 성령의 바람을 넣고 말씀의 능력을 집어넣어서 패스할 때, 아이들의 심령이 변하고 영혼이 변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아이들을 가르칠 때 성령께서 더 큰 역사를 보여주시는 것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남수단에서 사역하시면서 지금은 중고등학교를 설립하고 운영하신다고 들었습니다. 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세요.
남수단 톤즈에서 축구사역을 하고 있는데 어느 날 남수단 축구협회 회장이 제 소식을 듣고 전화를 해왔습니다. 남수단 국가대표 감독을 맡아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그렇게 되어 2016년도 리우 올림픽에서 부위원장직도 맡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한국의 모교회 성도님이 남수단 다큐를 보면서 그 곳에 교회를 지어달라고 수억의 헌금을 해서 그것이 시작이 되어서 학교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맨 처음 제가 그 학교를 지을 땐 1700명이였는데 학교 공사를 마무리하자 3천명이 늘어났습니다. 전쟁고아도 800명 이였습니다. 그리고 좀 떨어진 곳에 6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학교를 또 지었습니다. 학교를 지으면서 그 안에 교회를 세워서 학교 안에서 예배도 드리고, 축구도 하고, 공부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저는 지금 현재 학교의 이사장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축구 영스타 클럽이라고 300명의 미래가 촉망되는 어린 축구선수들을 가르치는 아카데미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와같은 꿈나무들을 키우기 위해 한국에 5~6명이 들어가 훈련받은 후 양주 FC에서 두 명이 현재 프로선수로 뛰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꿈이 이루어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