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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위클리 (2024-43호): 글로벌사우스의 부상과 아프리카의 위치권력

관리자 / 2024-09-27 오후 3:00:00 / 417
글로벌사우스의 역사적 진화: 비동맹주의에서 대항적 공존으로
No.43(2024.09.27.)
한·아프리카재단 조사연구부가 매주 전하는 최신 아프리카 동향과 이슈

       
     
   
       
     
   
글로벌사우스의 부상과 아프리카의 위치권력
       
     
   
김태균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2023년 BRICS 정상회의 단체사진
(왼쪽부터)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 모디 인도 총리, 세르게이 라브로브 러시아 외교부장관
1. 글로벌사우스의 역사적 진화: 비동맹주의에서 대항적 공존으로
글로벌사우스(Global South)는 단순히 경제적 수준 혹은 지리적 위치에 따라 정의되는 실증적인 실체가 아니라, 식민지 경험과 정치적 저항을 국제연대로 승화시킨 남반구 개발도상국 간의 상상공동체로서 일종의 메타적 범주에 해당하는 지정학적 개념이다. 

글로벌 사우스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식민지배에서 독립한 저개발국가들의 그룹을 ‘제3세계’로 명명했던 역사적 경험에서 유래되었고, 1955년 반둥회의(Bandung Conference)*, 1964년 G77과 유엔무역개발협의회(UN Trade and Development: UNCTAD) 출범, 1974년 신국제경제질서(New International Economic Order: NIEO)** 선언, 1986년 사우스위원회(South Commission) 설립 등으로 제3세계 프로젝트가 비동맹주의와 국제연대의 연속선상에서 진화되었다. 그러나 탈냉전 이후 제2세계의 붕괴로 인해 제3세계 개념의 유용성이 흔들리면서 글로벌사우스가 제3세계를 대체하는 개념으로 변모하게 된다. 최근에 들어와서는 중국과 인도의 경제성장, BRICS 출범 및 확장, 유엔 등 국제무대에서 글로벌사우스 회원국들의 발언권 확대 등으로 글로벌사우스의 부상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으며, 미국 리더십의 약화와 중국 및 러시아의 영향권 확대로 인해 글로벌 사우스에 대한 관심이 더욱 늘어나고 있다. 

* 1955년 4월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아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가 개최되었다. 이 반둥회의는 식민지주의 종식을 가속화하고 미·소 간의 냉전에서 중립을 지키면서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들 사이 유대 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다.
** 1970년대에 걸쳐 UNCTAD를 통해 개발도상국들이 제안한 국제경제체제 

비동맹주의에 입각한 제3세계 프로젝트는 1955년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개최된 역사적인 반둥회의에 의해 공고한 기반을 형성했고 탈냉전 시기 이전까지 제3세계 국가들 간의 남남협력(South-South cooperation)을 강조하는 이념적 연대의 토대가 되었다. 냉전 시기, 비동맹주의와 탈식민주의 중심의 ‘반둥정신’은 글로벌노스(Global North)에 집합적으로 대항하며 새로운 국제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형성된 느슨한 대오지만 제3세계의 국제연대를 강조했다. 한편, 탈냉전 시대의 글로벌사우스는 냉전시대의 비동맹주의에서 ‘대항적 공존’이라는 새로운 접근법으로 글로벌 노스와 관계 맺기 방식을 모색한다. 냉전 종식과 더불어 글로벌노스 주도의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미국 중심의 단극체제 등 외부환경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전략으로서 글로벌사우스는 비동맹주의보다 현실주의적 실용주의인 대항과 공존의 공진화에 무게중심을 더 두게 된다. 

반둥체제에서는 쉽게 시도되지 않았던 글로벌노스와의 선택적 협력이 탈냉전 시대에 들어와 가능해졌고, 이에 따라 비동맹주의의 쇠퇴와 남남협력의 정치세력화도 주목을 받는다. 탈냉전 시기 글로벌사우스를 대표하는 BRICS 등의 소다자주의적 협력 플랫폼이 새로운 행위주체로 등장함과 동시에 냉전기에 잠재되어 있었던 글로벌사우스 권역 내 패권국들의 경쟁과 갈등이 수면 위로 부상했다. 또한, 미-중 전략경쟁, 러-우 전쟁, 이-팔 분쟁 등 국제관계의 위기국면에서 미국의 리더십이 약화되면서 글로벌사우스의 정치적 입장과 지지가 미국, 중국, 러시아 등 강대국들에게 대단히 중요한 변수로 인식되고 있다. 따라서, 글로벌사우스를 끌어안기 위한 이들의 노력은 경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54개국이라는 상대적으로 많은 수의 국가로 이루어진 아프리카 대륙은 글로벌사우스 권역 내 핵심 지역으로 간주된다. 제3세계와 글로벌사우스의 역사적 진화과정에서 아프리카의 위치권력은 지속적으로 확장되어 왔는데, 반둥회의를 주도한 4인 중 이집트의 나세르(Gamal Abdel Nasser)가 아프리카를 대표하였으며, 반둥회의 이후 결성된 비동맹정상회의를 지금까지 아프리카 회원국이 5차례 주최하는 등 아프리카는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또한, 알제리가 1967년 제1차 G77 회의를 개최한 바 있고, 1973년 제4차 비동맹정상회의 개최지인 알제(Algiers)에서 역사적인 NIEO가 제안되기도 하였다. 2023년에는 BRICS 정상회의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개최되었고, 2025년에는 G20 정상회의를 남아프리카공화국이 개최할 예정이다. 또한. 식민지배로부터의 독립과 제3세계의 탈식민화 과정에서 가나의 은크루마(Kwame Nkrumah), 탄자니아의 니에레레(Julius Nyerere),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만델라(Nelson Mandela) 등 아프리카 지도자들이 이를 선도했고 이들의 리더십은 여타 제3세계의 다른 지역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탈냉전 시대에도 아프리카 국가들은 글로벌노스의 구식민종주국들과 협력하는 동시에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에 협력하는 등 대항적 공존 전략을 취함으로써, 미국과 중국으로부터 적극적인 구애를 동시에 받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역내 빈곤, 질병, 부패, 독재, 분쟁, 내전 등 저발전의 요인이 아프리카의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저해하고 있어 글로벌노스와 남남협력이 제공하는 외부 원조의 수혈을 받아야하는 상황이다.  
2. 글로벌사우스로서 아프리카의 관여 전략
미국과 중국 간의 전략경쟁이 심화되고 러-우 전쟁과 가자지역에서의 분쟁이 장기화되면서, 미국과 G7의 글로벌 리더십과 자유국제질서가 점차 약화되는 정치적 공위시대(interregnum)*에 적극적으로 관여할 행위자로서 글로벌사우스 및 아프리카가 주목을 받고 있다. 이는 아프리카가 국제질서의 균형자 역할 또는 심지어 ‘게임체인저(game changer)’ 역할까지 도모할 수 있다는 예상을 가능케 한다.  

* 과거의 권력이 여하의 이유로 인해 소멸한 뒤 다른 권력이 수립되기 전까지의 공백 기간 

무엇보다, 아프리카의 관여(engagement) 전략은 사우스 중심의 소다자주의 협력체를 구성하거나 기존의 플랫폼을 활용하여 사우스의 위치권력을 확장하는 방식으로 수렴한다. 글로벌사우스 지역별로 다양한 지역협력기구가 운영되고 있는데, 아프리카에서는 대표적으로 아프리카연합(African Union: AU),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Economic Community of West African States: ECOWAS) 등 다양한 지역기구가 있다. 동시에 아프리카는 BRICS와 같이 지역을 넘어서 글로벌 수준의 사우스 간 협력을 추진하는 플랫폼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2023년 BRICS 정상회의을 개최하여 이집트, 에티오피아,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아르헨티나, 아랍에미리트 등 신규 회원국 6개국 가입 승인을 유도함으로써 BRICS 자체 외연을 확장함과 동시에 BRICS 내에서 자국 이외에 이집트와 에티오피아 등 아프리카의 영향력을 확장하는데 기여했다.    

둘째, 아프리카는 사우스 역내 협의체 이외 글로벌노스와의 다자협력기구에 참여함으로써 아프리카 및 사우스의 입장을 강조하는 관여전략을 구사한다. G77 등을 통해 유엔에 적극 참여하여 단일된 목소리로 다자질서의 주도권을 확보하거나 글로벌노스의 영향력에 균형자 역할을 할 수 있다. 2023년 인도에서 개최된 G20 정상회의에서는 AU가 국제기구 회원으로 가입되면서 유럽연합(EU)과 같은 수준의 대우를 받게 되었다. 또한, 영국에서 개최된 2021년 G7 정상회의에 한국, 호주와 같이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초대되어 중국을 겨냥한 인프라 프로젝트 ‘더 나은 세계재건(Building Back Better World)’에 G7과 함께 남아프리카공화국도 참여하는 분위기가 연출된 바 있다.  

셋째, 아프리카 국가들은 자국의 위치권력 확대를 위해 사우스 집합체가 아닌 독자적인 행동을 취하는 관여전략을 구사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2023년 12월 남아프리카공화국 라마포사(Cyril Ramaphosa) 정부가 국제사법재판소에 이스라엘을 제노사이드 위반 혐의로 제소한 사례이다. 미국과 G7 등 글로벌노스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 사이에서 발생한 무력 분쟁을 중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가자지역 민간인을 대상으로 벌이는 무차별 공격을 남아프리카공화국이 먼저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함으로써, 이는 자유진영이 보유했던 글로벌 거버넌스의 리더십에 손상을 입히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러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독자적 행보는 2024년 2월 에티오피아에서 개최된 AU 정상회의에서 회원국들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을 비난하고 즉각 중단을 촉구하는 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3. 아프리카의 전략적 가치와 딜레마
이러한 아프리카의 관여전략은 비동맹주의와 자율적 헤징(hedging)을 위한 선택적 균형전략(selective balancing act)을 통해 현실정치에서 구현된다. 그러나, 아프리카가 비동맹주의에 따라 글로벌웨스트(Global West)와 글로벌이스트(Global East) 간에 일정 수준 거리를 유지하려고 하지만, 양 진영은 아프리카 국가들을 유인하기 위한 협력의 미끼를 경쟁적으로 제시한다. 또한, 글로벌사우스 권역 내 중국과 인도 간의 주도권 경쟁에 있어 아프리카는 어느 한 쪽에 기울지 않고 양쪽 모두와 친교를 통해 균형자 역할을 강화하고 자국의 안보와 경제적 이익을 도모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실제로, 아프리카는 일본·중국·러시아·인도·미국·튀르키예 등 다양한 경제원조 공여국이 자국의 전략적 이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접근하는 주요 파트너 대상이다. 아프리카와의 협력관계를 확장하기 위한 공여국의 경제원조 플랫폼이 1990년 초반부터 구축되었고 이는 점차 다양한 공여주체로 확대되어 현재 치열한 경쟁체제로 돌입한 상태이다. 1993년 최초로 일본이 도쿄아프리카개발국제회의(Tokyo International Conference on African Development: TICAD)를 출범시켜 하나의 공여국이 54개의 아프리카 국가들을 상대로 정상회의를 추진하는 형태가 등장했다. 중국은 2000년부터 중국-아프리카협력포럼(Forum on China-Africa Cooperation: FOCAC)을, 인도는 2008년에 인도-아프리카포럼정상회의(India-Africa Forum Summit)를, 미국도 늦게나마 2022년에 미국-아프리카지도자정상회의(U.S.-Africa Leaders Summit)를 출범하였으며, 2024년 6월에는 한국이 한-아프리카 정상회의를 주최하면서 對아프리카 협력을 위한 경쟁대열에 동참했다. 아프리카는 공여국들의 경쟁적 지원에 균형전략을 유지할 것이며, 균형전략을 통해 각 공여국으로부터 경제지원을 극대화할 가능성이 크다.  
 
아프리카가 다른 글로벌사우스 지역에 비해 주요 공여국의 지원을 경쟁적으로 받는 이유는, 아프리카가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균형자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을 방증하는 동시에 아프리카가 경제적 잠재력으로 인해 차후 사우스 부상을 견인할 중요한 지역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프리카의 경제적 매력은 풍부한 핵심광물 자원, 값싼 노동력, 미래의 구매력 등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이러한 아프리카의 잠재력은 미국과 중국으로 하여금 아프리카를 반드시 포용해야 하는 파트너로 인식하게 만든다. 특히, 전 세계 30%의 희토류 금속과 관련된 핵심광물자원이 아프리카 대륙에 매장되어 있어, 미-중 전략경쟁 속 전략 자원의 가치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그러나, 아프리카가 균형자 역할을 넘어서 국제질서의 게임체인저가 되기에는 분쟁, 빈곤, 부패 등 아직 아프리카 내부에서 해결해야 할 개혁의 숙제가 즐비하다. 2024년 현재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발생하는 무력분쟁의 수는 최소 35건으로, 아프리카는 중동·북아프리카 다음으로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무력분쟁이 많이 발생하는 지역이다. 빈곤문제의 경우, 글로벌 기준에서 극빈율이 30% 이상인 전 세계 28개의 최빈국 중 23개국이 아프리카 대륙에 있다. 또한 지독한 부패로 인하여 공공재원을 일부 엘리트 개인이 착복하는 문제가 아프리카에서 반복되고 있으며 이러한 부정부패는 결국 경제성장을 저해하고 해외직접투자의 의욕을 꺾는 부작용을 양산한다.   
4. 한국의 아프리카 포용전략을 위하여
한국의 對아프리카 포용전략은 다른 공여국들과 차별화된 한국만이 제시할 수 있는 비교우위 협력의 비전과 방향성에 토대를 두어야 한다. 특히, 한국이 근대화 과정에서 경험한 발전경로를 아프리카와 공유하고 글로벌웨스트와 글로벌이스트가 제공할 수 없는 지식공유 프로젝트 등을 차별화 전략의 근간으로 삼아야 힌다. 이는 아프리카 파트너 국가들이 한국에게 기대하는 바와도 일치한다. 한국은 일제강점기의 식민지배, 독립과 분단, 한국전쟁, 경제추격, 민주화, 외환위기 등을 거치면서 단기간 내 성공적인 근대화 과정을 달성하여 과거의 글로벌사우스에서 현재의 글로벌노스로 이전한 독특한 사례이다. 아프리카 국가들이 가장 알고 싶어 하는 경제발전과 거버넌스 개혁의 해법이 한국 근대화의 역사에 적절히 배태되어 있다. 아프리카 대륙이 경제발전과 정치적 민주화를 성공적으로 이행할 수 있도록, 한국의 경험을 공유하고 아프리카의 선택적 균형전략에 의해 한국이 주요 파트너로 선택될 수 있는 상생의 비전을 한국의 對아프리카 포용전략에 제시해야 한다. 

아프리카 관여전략의 핵심 전술로 아프리카가 균형자의 역할을 위치권력으로 설정하는 경향이 강하나, 한국은 아프리카에게 균형자보다는 글로벌노스와 글로벌사우스 사이 또는 글로벌사우스 내부의 ‘커넥터(connector)’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균형자는 아프리카 국가들이 자국 이익을 위해 협력이 필요한 파트너 국가를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에, 국제사회의 입장에서는 문제의 현상유지 내지 BRICS와 같은 특정 주요 국가의 국익 확장의 도구로 아프리카의 균형자론을 인식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반면, 커넥터의 위치권력은 상호협력이 필요한 파트너를 연계하고 글로벌 위치와 상관없이 협치 가능성을 제고하는 대안적인 기능을 강조할 수 있다. 커넥터로서 한국이 아프리카와 조우할 때 작금의 글로벌 거버넌스 문제를 함께 개혁하고 국제질서가 미-중 전략경쟁에 흔들리지 않도록 한국과 아프리카가 파트너로서 공조할 수 있다. 아울러, 아프리카가 커넥터로 거듭 날 때 비로소 국제질서의 진정한 게임체인저로 인정받을 수 있다.    

  김태균

현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현 서울대학교 아시아-아프리카센터 센터장

현 서울대학교 국제학연구소 소장 
현 서울대학교 글로벌사회공헌단 단장
전 국제개발협력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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