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식민지배 시기 동안 아프리카의 문화재 수천 점이 유럽으로 반출되었으며, 현재도
한·아프리카재단 조사연구부가 매주 전하는 최신 아프리카 동향과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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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식민지배 시기 동안 아프리카의 문화재 수천 점이 유럽으로 반출되었으며, 현재도 다수의 유물이 주요 박물관과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 과거 식민지배를 받았던 국가들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고 문화유산이 단순한 예술품을 넘어 민족 정체성과 주체성의 상징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며 문화재 반환에 관한 논쟁도 그 중요성과 의미가 더욱 커지고 있다. 최근 아프리카 국가들은 반출된 문화재에 대한 반환 요구를 본격화하고 있으나 소유권을 둘러싼 복잡한 논의는 여전하다. 이번 위클리에서는 아프리카리포트(The Africa Report)지의 관련 기사를 토대로 반환 논쟁이 지속되고 있는 10건의 대표적인 아프리카 문화재를 살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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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베냉 브론즈(Benin Bronz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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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반출 경위
베냉 왕국(Benin Kingdom, 現 나이지리아 남부)이 영국의 통상 요구를 거부하자 영국이 1897년 보복 원정(British Punitive Expedition)을 감행, 왕궁을 불태우고 수천 점의 문화재를 약탈한 후, 이를 경매 및 박물관을 통해 유럽 전역에 배포했다.
② 소장 장소: 대영박물관(British Museum), 독일 민속박물관(Museum fur Volkerkunde), 네덜란드 라이덴 국립박물관(National Museum of Antiquities, Leiden) 등
③ 제작시기 및 가치
베냉 브론즈는 나이지리아 에도 주(Edo State)에 있던 베냉 왕국의 왕궁을 장식한 수천 개의 정교한 청동판과 조각품들이다. 금속뿐만 아니라 상아나 목재로도 만들어진 다양한 예술품들이 있다. 예술적으로 매우 뛰어나며 베냉 왕국의 정치·종교·예술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아프리카 예술품으로 평가된다.
④ 논란 및 반환 현황
대영박물관은 약 900점의 가장 많은 베냉 브론즈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지만 법적제약을 근거로 반환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대영박물관은 1963년 제정된 '대영박물관법(British Museum Act)'에 따라 박물관의 소장품을 국가의 자산으로 간주하며 소장품을 영구적으로 반환하거나 양도하는 것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한편, 독일은 베냉 브론즈 반환에 있어 유럽 국가 중 가장 적극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 2022년 7월 나이지리아와의 공식 합의를 통해 약 1,100점의 유물을 반환하기로 결정했다. 같은 해 12월, 독일은 20점의 베냉 브론즈를 나이지리아에 반환했으며 일부 유물은 독일 박물관에 장기 대여 형식으로 남아 전시될 예정이다.
네덜란드는 2025년 2월 19일, 베냉 브론즈 119점을 나이지리아에 반환하기로 공식 발표했다. 이 중 113점은 네덜란드 라이덴의 베렐트뮤지엄(Wereldmuseum Leiden)에 보관되어 있었으며 나머지 6점은 로테르담 시 소유였다. 이 반환은 네덜란드 정부와 나이지리아 국립박물관기념물위원회(National Commission for Museums and Monuments) 간의 협력으로 이루어졌으며, 1897년 약탈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베냉 유물 중 단일 국가에서 이루어진 가장 큰 규모의 반환 사례로 알려져있다.
나이지리아는 2023년 무하마두 부하리(Muhammadu Buhari) 전 대통령의 칙령에 따라 반환된 베냉왕국 유물의 법적 소유자이자 관리자로 베냉왕국의 전통 통치자인 오바(Oba)를 지정했다. 이에 따라 반환된 베냉왕국의 유물은 나이지리아 베냉 시티에 건립될 베냉 왕립 박물관(Benin Royal Museum)에 전시될 계획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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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반출 경위
1799년 프랑스군이 이집트 나일강 하구 근처 로제타(Rashid)에서 발견. 이후 1801년 영국군이 나폴레옹 전쟁 중 프랑스군을 패배시키며 점령, 1802년 ‘알렉산드리아 조약’에 따라 영국이 이집트를 실질적으로 장악하게 되면서 프랑스가 로제타석을 포함한 유물을 영국에 양도했다.
② 소장 장소: 대영박물관(British Museum)
③ 제작시기 및 가치
기원전 196년 프톨레마이오스 5세 시대에 제작된 비석으로, 고대 이집트의 법령이 새겨진 석판이며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 해독의 열쇠가 된 중요한 유물이다. 신성문자(Hieroglyphs), 민중문자(Demotic), 고대 그리스어 세 가지 문자로 동일한 내용이 새겨진 석비로, 고대 이집트어를 해독할 수 있는 결정적 단서를 제공하고 고고학·언어학적으로 현대 이집트학(Egyptology)의 탄생을 이끈 유물로 평가된다.
④ 논란 및 반환 현황
이집트 정부는 로제타석을 ‘전리품’으로 간주하며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2022년에는 전 고대유물부 장관이자 저명한 이집트 고고학자인 자히 하와스(Zahi Hawass)의 주도로 10만 명 이상이 서명한 반환 청원을 제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영박물관은 1801년의 항복 협정과 1963년 대영박물관법을 근거로 반환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대영박물관은 2017년 로제타석의 3D 모델을 홈페이지에서 공개하고 있지만, 이집트 측은 원본 반환을 지속 요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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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니아먀로 왕좌(Nyamyaro Royal Stoo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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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아먀로 왕좌 ⓒPitt Rivers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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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반출 경위
1894년, 영국 식민군이 현재 우간다에 위치한 부뇨로 왕국(Bunyoro Kingdom)을 침공하며 왕좌를 포함한 총 279점의 문화유산을 약탈했다.
② 소장 장소: 옥스퍼드대학교 피트리버스 박물관(Pitt Rivers Museum, Oxford University)
③ 제작시기 및 가치
부뇨로 왕국 왕의 정통성과 통치권을 나타내며 왕국의 정체성과 단합을 상징하는 제례 유물이다. 9개의 다리가 있는 목재 의자로, 부뇨로 왕국의 왕이 앉는 공식 왕좌이다.
④ 논란 및 반환 현황
2014년 우간다는 반환을 공식 요청하였으나, 박물관 측은 반환 여부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우간다 정부는 2016년부터 ‘우간다 박물관 재편성(Repositioning the Uganda Museum)’* 프로젝트를 통해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박물관에서 39개의 문화재를 반환 받았다. 이는 부뇨로 왕국의 문화유산 반환 운동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계속해서 영국 정부와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2016년에 시작된 우간다 정부의 이니셔티브로, 식민지 시대에 약탈된 우간다의 문화유산을 반환하고, 이를 통해 우간다 박물관의 정체성 확립과 전시 재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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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방와 여왕 조각상(Statue of Queen Bangw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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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와 여왕 조각상 ⓒDapper Found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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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반출 경위
1890년대 후반, 독일 식민 세력과 상인들이 방와 왕국(Bangwa Kingdom, 現 카메룬 서부)에서 유출한 후 여러 차례 소유자가 변경됐고 1990년에 파리의 다퍼 재단(Dapper Foundation)*이 경매를 통해 소유하고 있다.
*다퍼 재단: 아프리카 문화와 예술을 연구하고 전시하는 프랑스의 비영리 문화기관
② 소장 장소: 프랑스 다퍼 재단
③ 제작시기 및 가치
약 81cm 크기의 나무 조각상으로 방와 왕국의 여성 통치자를 형상화한다. 방와 왕국의 전통에서 ‘레펨(lefem)’이라 불리는 여성 조각상은 문화적, 종교적 의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여성 권위와 공동체 정신을 상징한다.
④ 논란 및 반환 현황
카메룬 정부를 비롯한 전통 지도자들은 이 유물의 반환을 위해 공개적인 노력과 법적 절차를 진행했지만, 현재까지 다퍼 재단은 공식적인 반환 결정을 내리지 않았으며, 유물의 소유권과 반환에 대한 논의는 계속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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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만두 예누 왕좌(Throne of Mandu Yen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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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반출 경위
1908년, 바뭄 왕국(Bamum Kingdom, 現 카메룬 서부)은 인접한 은소 왕국(Nso Kingdom)과의 전쟁에서 독일군과 함께 작전을 벌였고, 바뭄 왕국의 마지막 왕인 이브라힘 은조야(Ibrahim Njoya) 왕이 독일 제국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고자 독일 황제 빌헬름 2세에게 왕좌를 선물로 제공했다.
② 소장 장소: 독일 베를린 민속박물관(Museum fur Volkerkunde, Berlin)
③ 제작시기 및 가치
이 왕좌는 1887년부터 1933년까지 통치한 이브라힘 은조야 왕의 명에 따라 제작되었으며, 정치적 권위와 영적 상징성, 왕실의 권력 정통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유산이다. 왕좌는 단단한 목재로 정교하게 조각되었으며, 유럽산 유리 구슬과 인도양에서 온 카우리 조개로 장식되었다. 두 개의 머리를 가진 뱀, 거미, 쌍둥이 형상, 왕국의 군사력을 상징하는 무장 인물들이 조각되어 있다.
④ 논란 및 반환 현황
공식적으로는 선물로 기록되어 있지만, 식민지 권력 관계 속에서 얼마나 자발적인 교환이었는지를 두고 의문이 제기되며 반환 요구의 법적 논거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2023년, 카메룬 바뭄 술탄이 독일을 공식 방문하여 직접 반환을 요청했으며 115년 만에 왕좌에 앉는 상징적 행사가 있었으나, 독일 당국은 왕좌의 반환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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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반출 경위
1921년, 잠비아 카브웨에서 채굴 작업 중 발견되었으며, 영국 광산업자에 의해 무허가로 반출되었다.
② 소장 장소: 영국 자연사박물관(Natural History Museum)
③ 시기 및 가치
약 30만 년 전의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Homo heidelbergensis) 두개골로, 인류 진화 연구에서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인류 진화의 중간 단계인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와 초기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사이의 연결 고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고고인류학적 자료이며, 두개골 형태와 상태는 당시 인류의 두뇌 용량과 생물학적 특성을 분석하는 데 핵심적인 근거로 사용되었다.
④ 논란 및 반환 현황
잠비아 정부는 1970년대부터 이 유골의 반환을 공식적으로 요청해왔다. 특히, 1912년 제정된 '부시맨 유물 조례(Bushman Relics Proclamation)'에 따르면, 북로디지아(Northern Rhodesia)에서 유물이나 인체 유해를 반출하려면 영국 식민정부의 허가가 필요했으나, 카브웨 두개골은 이러한 허가 없이 반출되었기 때문에 불법적인 이전이라고 주장한다.
영국 측은 이 유골이 당시 합법적으로 기증되었으며, ‘1963년 영국박물관법’에 따라 반환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2024년 5월에 열린 유네스코 문화재 반환 정부 간 위원회(Intergovernmental Committee on Return and Restitution: ICPRCP) 제24차 회의에서 유네스코는 잠비아의 반환 요청을 지지하며, 양국이 2026년까지 반환 로드맵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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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네페르티티 흉상(Bust of Nefertit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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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반출 경위
1912년, 독일 고고학자 루돌프 보르하르트(Rudolf Borchardt)가 발굴한 유물 중 하나로, 식민지 시대 유물 분배 제도인 파르타주(partage)*에 따라 독일로 반출되었다.
*파르타주(partage): 프랑스어로 ‘분할’을 뜻하며 19~20세기 초 유럽 고고학자들이 식민지나 위임통치지에서 발굴한 유물을 현지 당국과 분할해 반출할 수 있도록 한 제도이다. 주로 프랑스, 영국, 독일 등의 유럽 열강이 자국 고고학자들의 발굴 활동을 정당화하고 유물 반출을 공식화하기 위해 활용했으며, 식민 권력의 불균형 속에서 정당화된 문화재 이전 방식이다.
② 소장 장소: 독일 베를린 신 박물관(Neues Museum, Berlin)
③ 제작시기 및 가치
기원전 약 1345년경 제작된 네페르티티 여왕의 석회암 조각상으로, 네페르티티 여왕은 고대 제18왕조의 파라오인 아크나톤(Akhnaton)의 아내이다. 조형미와 보존 상태가 뛰어나 고대 이집트 조각 예술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④ 논란 및 반환 현황
이집트는 반출 경위의 불법성을 주장하며 반환을 요구하고 있으며, 자히 하와스(Zahi Hawass) 전 이집트 고대유물부장관은 이 유물 반출을 “기만적이고 불법적”이라고 규탄한 바 있다. 그러나 독일은 합법적 절차에 따른 획득이라며 반환을 거부하고 있다. 또한 흉상이 매우 섬세하고 파손 위험이 높아 이동이 불가능하다는 입장도 고수하며 양측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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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아샨티 왕실 금장식(Asante Royal Rega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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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반출 경위
1874년, 영국군이 아샨티 왕국(Asante Kingdom, 現 가나)을 침공하며 약탈했다.
② 소장 장소: 대영박물관(British Museum),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Victoria and Albert Museum) 등
③ 제작시기 및 가치
아샨티 제국의 금세공 예술의 정점을 보여주는 왕실 장신구로, 검, 황금 평화 파이프, 의례용 모자, 관리들이 착용하던 황금 배지 등이 포함 되어 있다.
④ 논란 및 반환 현황
2024년 5월, 대영박물관과 V&A박물관은 아샨티 왕 오툼푸오 오세이 투투 2세(Otumfuo Osei Tutu II)와의 직접 협상을 통해 금은 유물 32점을 3년 장기대여 형식으로 돌려주었다.(이는 영국예술위원회(Arts Council England)의 승인을 받아 3년 더 연장할 수 있다.) 이 유물들은 쿠마시(Kumasi)에 있는 만히야 궁전 박물관(Manhyia Palace Museum)에 전시되고 있다. 그러나 영구반환이 아닌 장기 대여 형식으로 반환되었다는 점에서 여전히 논란의 여지를 안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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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가지 북 ⓒinventoriesprogramme.or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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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반출 경위
1902년, 영국 식민당국이 케냐 포코모인(Pokomo)들로부터 압수했다.
② 소장 장소: 대영박물관(British Museum)
③ 제작시기 및 가치
이 북은 지도자 선출, 기우제와 같은 종교적 의례와 공동체 통합에 사용된 신성한 북으로, 영적·문화적 상징성이 크다. 응가지는 조상의 힘이 깃든 존재로 여겨졌으며 포코모인들의 정체성의 핵심을 이루는 영적·문화적 유산이다.
④ 논란 및 반환 현황
현재 응가지 북은 전시되지 않고 대영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는 상태다. 포코모 출신 디아스포라를 포함한 활동가들이 이 북의 문화적 중요성을 알리고 반환을 촉구하는 운동을 지속적으로 벌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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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막달라 전리품(Magdala Treasur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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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달라 전리품 중 에티오피아 황제 왕관ⓒVictoria and Albert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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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반출 경위
1868년, 영국군이 에티오피아의 막달라 요새(Magdala Fortress)를 점령한 뒤 에티오피아 제국(Ethiopian Empire) 황제의 왕관을 비롯한 황실 보물과 교회 소장품 수백 점을 약탈했으며, 이후 전리품 경매를 통해 영국 병사와 기관들로 분산되었다. 대영박물관이 약 90점 이상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고, 옥스퍼드대학교 보들리언 도서관은 수백 권의 필사본을 소장 중이다.
② 소장 장소: 대영박물관(British Museum), 옥스퍼드대학교 보들리언 도서관(Bodleian Library, Oxford University), 영국 성공회(Church of England) 등
③ 제작시기 및 가치
에티오피아 제국의 기독교 전통과 국가 정체성을 상징하는 유물로, 왕관, 금·은 장식품, 성경, 십자가, 왕실 의복 등 종교적·왕실적 중요성을 지닌 문화재이다. 유럽 내에서 에티오피아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관심을 자극하고 연구의 기초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④ 논란 및 반환 현황
에티오피아 정부와 문화 단체는 수십 년간 유물의 전면 반환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으나, 영국의 국내법에 따라 반환이 이루어지지는 않았으며 일부 기관들이 장기대여 형식으로만 응답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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