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구기의 문학적 유산은 단지 작품의 형식과 내용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서구의 근대가 왜곡한 세계문학의 장 안에 음전하게 포섭되기를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비서구 작가의 실존적 조건을 적극적으로 투사하여 문학의 존재론과 사회적 기능을 근본적으로 다시 사유하도록 촉구하는 일련의 정치적이고 미학적인 기획을 실천한 작가였다. 동시에 그는 모국어/토착어를 회복하고, 기억을 복원하여, 저잣거리 민중의 언어로 역사를 다시 쓰는 문학의 가능성을 극한까지 실험한 작가이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문자로 구성된 소설 텍스트가 아니다. 그 텍스트의 행간을 절절하게 횡단하는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질문이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문학은 어떻게 세계를 바꿀 수 있는가? 비서구의 문학적 연대는 가능한가?
앞서 가볍게 소개했듯이, 응구기는 한국 문학에 대해 깊은 존중과 공감을 표명한 바 있다. 2016년에 <박경리 문학상>을 수상할 당시, 그는 『토지』를 “민중과 언어 및 역사와 장소에 대한 깊은 서사적 탐구”라 평가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한강과 몇 해 전 미국에서 함께 한 낭독회에서도 “한국 문학은 시적이고도, 저항적이며, 민중의 상처를 가시화하는 언어적 힘”을 지니고 있다고 상찬했다.
응구기가 한국 문학에 특별한 관심을 보인 이유는 역사적 친연성(親緣性) 때문이다. 식민지 시절의 한국 작가들도 모국어/조선어를 보존하고 유지하려 간난신고(艱難辛苦)를 겪었다. 언어가 정체성의 본질이자 문화적 저항 혹은 해방의 최종심급임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해방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4.19를 전후로 하여 일본어 세대와 한글 세대가 문학장의 언어적 헤게모니를 놓고 충돌했다. 이후 한국이 미국의 영향권 아래 놓이면서 영어가 일본어의 자리를 대리했다. 지구 저편에서 응구기가 행한 선택과 결단은 한국 문학이 차제에 나아갈 방향과 관련해 유용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한국 문학은 응구기가 대변하는 아프리카 문학과 유사한 역사적 조건 아래에서 유사한 문학적 실천을 전개해 왔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식민지를 경험한 제 문학은 유사한 궤적을 밟았다. 그런 의미에서 응구기가 한국 문학과의 교감을 통해 일찌감치 선취한 미학적 돌파구 찾기 행위는 오늘날 지구촌 남반구 문학 간의 연대와 관련해서도 흥미로운 조타수 역할을 하고 있다. 서구를 중심축에 놓지 않고도 문학적 차원에서의 남-남 연대가 충분히 의미 있는 효과를 낳을 수 있음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이는 작금의 세계문학이 더 이상 서구의 언어와 제도 그리고 시장의 문법에 좌우되지 않음을 방증한다. 서구가 강제한 문학적 질서와 배치를 넘어 비서구의 생활세계가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서사 전략을 매개로 세계를 새롭게 구성하고 호출하는 감각이 빛을 발하는 시대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우리가 할 일은 명확하다. 응구기의 유산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계승하는 것이다. 그리고 집요하게 다시 묻는 것이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누구의 언어로 문학을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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