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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17 [아프로⑧] 팅가팅가 미술로 아프리카의 오늘과 호흡하다 [월드코리안뉴스]

관리자 / 2021-06-18 오전 8:19:00 / 1701

김우숙 푼다밀리아 대표는 탄자니아 현대미술인 팅가팅가(Tingatinga)를 그리는 작가이다. 그는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Dar es Salaam)에 있는 팅가팅가미술협동조합(TACS) 의 소속 작가들에게 그림을 배웠으며,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아프리카 현대미술로서 팅가팅가 미술을 주제로 논문을 작성하였다. 현재 그가 운영하는 푼다밀리아에서는 본인의 것뿐 아니라, 현지 작가의 작품 및 팅가팅가 아트 상품을 접할 수 있다. 그는 푼다밀리아를 통해 아프리카 미술을 알리고 자신을 팅가팅가 미술의 세계로 이끌어준 탄자니아 현지 예술가들과의 상생을 도모하고 있다.

아프리카, 아니 탄자니아를 처음 만나다

팅가팅가 미술과의 인연은 우연한 기회에서 시작됐다. 대학에서 환경공학을 전공한 나는 2004년 한국국제협력단(KOICA) 18기 해외봉사단원으로 탄자니아에 파견돼 2년간 수질관리 분야에서 활동했다. 약 3개월 동안 스와힐리어를 배우고 현지 적응을 마친 13명의 단원들은 파견기관에 따라 탄자니아 각지로 흩어졌고, 나는 다르에스살람의 우붕고(Ubungo) 지역에 머물게 됐다. 내가 활동할 기관은 다르에스살람 대학 옆에 위치한 환경부 산하 수질대학(Chuo Cha Maji: Water Institute)으로 환경전문가를 양성하는 곳이다.

그곳에서 나는 물 관련 공중보건과 위생을 학생들에게 가르쳤다. 기관에서 제공해준 숙소는 학교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으나 피부색이 다른 사람은 나밖에 보이지 않는 현지마을이었다. 출퇴근길에 마주치는 어린아이들은 무서운 괴물을 본 마냥 소리 지르며 도망가기 일쑤였고, 어른들은 망고를 살 때도, 현지 숯불 고기인 냐마초마(Nyama choma)를 살 때도 나를 ‘대놓고’ 빤히 쳐다보았다. 그래도 인지상정은 만국공통이라고 어설픈 스와힐리어로 떠들어대는 이방인이 기특했는지 금세 인사도 받아주고 모두 나의 멋진 스와힐리어 선생이 돼 주었다.

집 앞에 앉아 머리를 땋으며 수다를 떠는 아주머니들, 페트병으로 자동차를 만들어 노는 아이들의 평화로운 일상.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가진 탄자니아에 익숙해질 무렵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민속박물관(Village Museum)이나 슬립웨이 쇼핑센터에 진열돼 있는 그림이었다. 이 그림을 처음 그린 사람의 이름을 따라 ‘팅가팅가’라고 불렸는데, 나이브 미술(Naive Art)에서 보이는 소박함과 유머, 개성 있는 리얼리즘이 있는 그림이었다. 처음에는 탄자니아의 뜨거운 태양만큼 강렬한 색감에 끌렸는데, 볼수록 그림 속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마침 민속박물관에서 활동하는 예술 분야 단원이 현지 화가 마사웨(Masawe)를 선생으로 섭외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에게 나도 끼워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대중교통 달라달라(Daladala)를 두 번 갈아타고 주말마다 므웽게(Mwenge) 지역에 있는 민속박물관에 가서 팅가팅가 그림을 배웠다. 이 당시에는 오이스터베이(Oyster bay) 지역에 있는 TACS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단원이 부자동네인 오이스테베이나 마사키(Masaki) 지역을 갈 일이 그다지 없었기 때문이다. 현재 민속박물관에서 활동하는 팅가팅가 화가는 없다.

팅가팅가의 매력에 빠지다

우선 ‘팅가팅가’가 무엇인지 말해야겠다. 팅가팅가 미술은 약 4년간 (1968~1972) 활동했던 탄자니아 화가 에드워드 사이디 팅가팅가(E. S. Tingatinga)에서 시작됐다. 탄자니아 남부 툰두루(Tunduru) 지역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에드워드는 생계를 위해 도시로 나왔다. 사이잘(sisal) 농장 인부, 정원사, 노점상인 등 다양한 일을 했지만, 생활이 여의치 않았던 에드워드는 우연히 시내에서 판매되는 다른 나라의 그림을 보고 자신도 한번 그려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철물점에서 구입한 합판과 페인트를 이용해 어린 시절 숲에서 보았던 동물이나 고향 마을 풍경을 그렸다. 그의 그림은 단순하지만 독특했다.

이 강렬하고 선명한 색상의 2D 그림은 가면이나 조각과 같은 3D 예술품에 익숙했던 이방인들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을 만큼 매력적이었으며, 특히 유럽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그에게 쏟아지는 찬사와 영광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1972년 5월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다. 이후 친인척으로 구성된 그의 제자들은 에드워드의 화풍을 이어가며 그림 영역을 넓혔고, 오늘날 팅가팅가는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하나의 미술로서, 탄자니아의 현대미술로서 자리를 잡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