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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06 [아프로24] PD의 감각으로 사회공헌사업을 이끌다-성영준 SBS 시사교양본부 사회공헌담당 국장 [월드코리안신문]

관리자 / 2022-01-06 오전 11:29:00 / 1486

‘SBS, 기아체험24시간’은 1990년대 말 장안의 화제였다. 사회공헌 특히, 아프리카 대륙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발 빠르게 접근한 SBS는 2011년 사회공헌 사업을 보다 더 체계화하고 공고히 하고자 SBS희망내일위원회를 발족하고 사내에 사회공헌부장이라는 새로운 직책을 만들었다. 그리고 성영준 PD를 그 자리에 임명했다. 의외의 결정이었다. 그 전까지 희망TV를 담당한 PD들이 모두 시사교양본부 출신이었던 반면, 성영준 PD는 예능본부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본인도 적지 않게 놀랐다. 사회의 즐겁고 밝은 면을 많이 조명해온 성영준 PD는 하루아침에 아프고 힘든 이면을 들여다보자니 영 힘들고 어색했다. 하지만 곧 예능 PD로서 참신한 기획과 아이디어를 실현시키기 위해 팀을 꾸리고 연예인, 협찬사를 섭외하듯 사회공헌 사업을 추진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회공헌 사업을 이끈 것이다. 이때 성영준 PD는 예능PD로서 자신의 기획과 프로그램이 시청자들의 공감을 받을 수 있을지 거듭 고민하며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습관이 큰 이점으로 작용했다.

성영준 PD는 모금 활동에 참여할 시청자와 사업에 동참할 유관기관, 사업의 주체가 될 아프리카 지역 사람들의 입장을 다각도로 고려해 사업을 진행했다. 그 결과, 10년이 채 되지 않는 시간에 아프리카 여러 국가에 희망학교 100곳을 짓는 등 물리적으로 큰 성과를 냈는가 하면, 정보통신기술(ICT), C4D(Communication for Development) 등의 새로운 개념을 사회공헌사업에 적용하는 데 성공했다.

예능 PD가 사회공헌 분야를 담당하다

2011년 SBS희망내일위원회가 발족했고 사회공헌부장이라는 새 직책이 만들어져 내가 그 자리에 임명됐다. 2010년 창사20주년 특집행사들을 기획하고 연출하느라 다른 팀에 파견 갔다가 예능본부로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나는 다시 돌아 온 예능본부에서 마지막 열정을 불사를 각오를 다지고 있었는데, 갑작스러운 인사이동에 적잖이 당황했다. 나는 처음에는 1년 정도 잘 버티고 다시 예능본부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사회공헌부장직을 맡은 지 두 달쯤 지났을 때였다.


하루는 사장단 회의에 불려갔다. 두 달밖에 겪지 않아 모든 것이 불확실했으나 한 가지 사실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예능본부에서 사회의 즐겁고 밝은 면을 조명해온 내게 가난, 질병, 기아 등의 주제는 영 낯설고 어렵다는 것을. 영문을 모른 채 회의실 맨 끝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회장이 회의 막바지에 선포하듯 말했다. ‘우리도 사회공헌부장이 생겼으니 당분간 사람 교체하지 마라. 오래 앉아 있어야 장기플랜이든 뭐든 나온다’고.

호시탐탐 예능본부로 복귀할 궁리를 하던 내게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나는 그날 마음속에 품어 왔던, 예능본부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의 불씨를 꺼버렸다. 내 앞에 놓인 새로운 선택지를 받아들이고 사회공헌, 공적개발원조 등의 개념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러모로 여태껏 해온 일과 성격이 달라 적응하기 어려웠다.

나는 가만히 앉아 곰곰이 생각했다. 왜 하필 나였을까. 그전까지는 시사교양 PD가 돌아가며 희망TV를 담당했다. 그런데 왜 이번에는 시사교양 PD가 아닌 예능 PD인 나를 앉혔을까. 내가 생각하기에 시사교양 PD와 예능 PD의 가장 큰 차이는 전자가 하나의 주제를 심도 있게 파고드는 일에 능하다면, 후자는 하나의 주제로 이야기를 확장하는 데 적합하다는 사실이었다.

일례로 게임 쇼 <보야르 원정대>의 연출을 맡았을 때 나는 50명이 넘는 출연자와 제작진들을 데리고 프랑스로 원정 촬영을 다녔다. 예능 PD 중에서도 나는 일 벌리는 데에는 두려움이 없는 편이었다. 그러니 회사에서 2006년 한국 최초의 우주인을 선발하는 과정을 다룬 특집 방송 <스페이스 코리아>의 연출을 맡겼을 터. <스페이스 코리아>는 한국 최초의 우주인을 전 국민을 대상으로 공개오디션 방식으로 선발하는 국가적으로 중차대한 사업인데 그 과정을 SBS가 단독 방영한다는 점에서 회사로서도 매우 중요한 프로젝트였다.

대통령 선거 방송팀에도 두 차례 불려갔다. 예능 PD로서 보도본부에 파견되어 선거 방송에 흥미 요소를 덧입히는 게 내 역할이었다. 나는 화제성을 끌어내는데 특히 능한 편이었다. <스페이스 코리아>를 연출할 때는 본선에 진출한 후보자를 데리고 무중력 상태에서 홍보 영상을 촬영할 기회를 얻은 적이 있었다. 신문사 한 곳이 동행했다.

나는 그날의 촬영을 미리 상상하며 SBS의 사기를 챙겨가 후보자들에게 태극기와 함께 들어주기를 요청했다. 그때 신문사 기자가 옆에서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모른다. 아무튼 그 덕에 다시없을 귀한 회사 홍보 자료를 남겼을 뿐 아니라 다른 매체에도 우리 사기가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효과를 톡톡히 봤다.

한편, 대통령 선거 방송을 담당할 때는 당선인에게 ‘시청자가 드리는 선물을 증정하는 이벤트’를 기획하고 선물도 직접 골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나는 온 국민이 웃으며 살게 해달라는 의미에서 하회탈을 선물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 탈을 기꺼이 써주는 바람에 다음날 아침 각종 일간지에 그 사진이 대문짝만 하게 실렸다.

아프리카 대륙에 100곳의 학교를 짓는 목표를 세우다

SBS는 사회공헌 사업에 빨리 뛰어든 편이었다. 1997년 체험과 방송, 모금 활동을 결합한 기아체험 프로젝트는 정말 큰 화제를 모았다. 전국의 수많은 시청자들이 관심을 갖고 모금 활동에 동참했다. 그런데 내부 사정은 조금 달랐다. 처음 기아 체험을 기획한 PD는 상도 많이 받으며 주목을 받았으나, 그 영광은 점점 줄어들었다.

몇 년이 지나자 희망TV를 맡은 PD들은 1~2년 머물면서 ‘특집 희망TV SBS 프로그램’을 연출하고는 다른 프로그램으로 이동하곤 했다. 지속가능성을 깊이 고민할 필요가 없으니 일관성은 떨어지고, 이벤트성은 커졌다. 자연스럽게 시청자들의 환호성도 줄어들었다. 기존 사업의 한계를 분석한 나는 사업 자체가 지속가능하면서 동시에 시청자들에게 ‘SBS는 착한 방송국’이라는 인상을 꾸준히 전해줄 필요를 느꼈다. 나는 지극히 PD의 입장에서 문제에 접근했다.

SBS는 현지에 사업을 단독으로 실행할 만한 노하우나 자본력이 부족했다. 외부 기관과 협업해야 사업이 지속가능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와 외부 기관의 역할과 책임을 어떻게 나누고 또 유기적으로 묶을지를 머릿속으로 계속 상상하며 구조를 만들었다. 마치 작가, 촬영감독, 오디오감독, 출연진 등을 어떻게 꾸려 유기적으로 작동시킬지를 고민할 때처럼 말이다. 우선 이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매력적이면서 동시에 현지에서 지속가능하게 구동할 수 있는 사업 아이템을 찾아야 했다.

그동안 회사가 진행한 사회공헌 사업을 들여다봤다. 기아체험, 우물 파주기, 학교 짓기 등 단발성의 사업들이 대부분이었다. 그중 유독 학교 짓기에 마음이 동했다. 내가 이 보직을 맡기 전, 한 교양 PD가 고인이 된 배우 박용하 씨와 함께 아프리카 차드에 가서 학교를 지었다. 그런데 완공이 되기 전 박용하 씨가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그와 평소 친분이 두터웠던 가수 이승철 씨가 유지를 이어받아 박용하 씨의 예명을 딴 ‘요나 스쿨’을 완공시킨 프로젝트를 알게 되었다.

안타까운 사연이 깃든 탓일까. 나는 여러 층위의 사연이 덧씌워진 이 사업에 유난히 마음이 갔다. 문득 국제개발을 공부하며 봤던 자료가 생각났다. 국제연합(United Nations: UN)이 2000년 발표한 ‘새천년 개발 목표(Millennium Development Goals: MDG)’이었다. 2015년까지 달성해야 할 8가지 목표 중 ‘보편적 초등교육의 실현’이 있었다.

2015년까지 전 세계 모든 남녀 어린이들이 동등하게 초등교육 전 과정을 이수하도록 한다는 내용이었다. 때마침 시기가 잘 맞물렸다. UN의 계획과 학교 짓기를 잘 연결하면 지속가능한 프로젝트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UN이라는 공신력 있는 국제기구의 계획이니 명분도 확실했다. 그리하여 5년 안에 아프리카 대륙에 학교 100곳을 짓는 ‘아프리카 희망학교 100개 짓기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우선 이 장기 프로젝트를 실행하려면 과거의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어 보였다. 방송을 통해 모금 활동을 한 후 모금된 돈을 NGO에 전달하는 방식으로는 시청자에게 우리의 역할과 기능을 인식시키기 어려웠다. 나는 SBS가 중심이 되어 프로젝트를 이끄는 방향을 상상했다. SBS가 기획하고 추진하는 프로젝트에 NGO와 기업이 함께하는 그림을 그렸다.

국제개발이든 사회공헌이든 우리가 플랫폼이 된다면 지속가능한 캠페인을 통한 근본적 해결방안에 보다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학교를 지어주고 끝나는 게 아니라 학교를 중심으로 지역사회의 발전을 꾀하면 훨씬 더 지속가능한 동시에 확장이 가능할 터. 또한 우리의 국민성을 고려했을 때 학교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소재라고 여겨졌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교육열이 높고 교육의 중요성에 깊이 공감한다.

특히 중·장년층 같은 경우 6·25전쟁 후 어려웠던 상황에서도 교육의 끈을 놓지 않은 덕에 경제와 국력을 지금의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예능 PD의 감으로 이것은 방송계에서 자주 쓰는 표현을 빌어 소위 ‘먹히겠다’고 판단했다. ‘먹힌다’는 말이 다소 속되게 들릴 수 있겠지만, 나는 이 표현을 예능 PD로 20년 활동하며 가장 많이 쓰고 또 고민했다. 예능 프로그램 하나 만들려면 너무나 많은 인력과 자본이 투입되기 때문에 시청자들에게 먹히는지 여부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 습관이 남아 사회공헌부장으로 일하면서도 회사, 유관기관, 기업, 시청자들에게 각각 먹힐지를 머릿속으로 치열하게 고민했다. 여러 다른 위치에 있는 사람들도 납득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지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도록 다년간 훈련한 덕분에 사회공헌 사업을 기획하고 추진하는 일이 훨씬 수월했다.

실제로 ‘아프리카 희망학교 100개 짓기 프로젝트’는 회사와 유관기관, 시청자들의 지지를 두루 받으며 순조롭게 진행됐다. 특히 학교 짓는 과정을 차곡차곡 모아 여러 차례 방영함으로써 시청자들이 이것이 지속적인 프로젝트라고 인식했으며, 후원자들은 어느 때보다 큰 보람을 느꼈다.